기사 작성 : 2022년 01월 19일
기사 제목 : [공동기획] 새해 북한 동향 ③ 성과보다 교훈 찾기에 집중하는 북한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2022년을 맞아 새해 북한 사회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집중 조명해보는 공동기획을 아래와 같이 준비하였다.
1. 삼지연시를 통해 본 북한의 불가사의
2. 북한은 어떻게 코로나 0을 유지하는가
3. 성과보다 교훈 찾기에 집중하는 북한
3. 성과보다 교훈 찾기에 집중하는 북한
최근 북한 문헌을 보면 ‘자책’과 ‘반성’, ‘교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아래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해 사업을 긍지스럽게 총화하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냉정성을 가지고 교훈적인 것을 먼저 분석해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전원회의의 목적 자체도 여기서 찾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가 찾게 되는 일련의 교훈들이 혁명적인 정책들을 더욱 보완하고 우리의 더 큰 발전잠재력을 불러일으키는 추동력으로 되게 하자는데 이번 전원회의를 소집한 중요한 목적이 있으며 여기에 혁명발전의 커다란 실천적 의의가 있다”라고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0월 10일 당창건 76주년 기념강연에서도 “자만과 자찬을 경계하고 자책과 반성을 장려하며 항상 고민하고 고심하는 것은 일꾼들의 변질을 막고 사업발전을 도모하는 좋은 방책”이라고 하였다.
더 거슬러올라가면 지난해 1월에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대회에서 자기 사업을 긍정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비판적인 견지에서 냉정하게 분석 총화한 것은 총결기간에 거둔 성과들에 못지않은 큰 의의를 가집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사업을 돌아보면서 성과를 찾고 긍지를 갖는 것과 함께 부족점을 찾아내고 여기서 교훈과 혁신과제를 찾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북한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수뇌부부터 성과에 도취되어 자만하지 않고 혁신에 방점을 찍어야 발전의 동력이 된다는 게 북한의 시각이다.
노동신문은 지난해 1월 27일 논설에서 “성과를 놓고 자화자찬하며 안일·해이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며 “편향과 결함들을 대담하게 인정하고 제때에 극복해나가야 혁명이 보다 높은 단계에로 올라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올해 1월 8일 보도에서는 “성과에서도 부족점을 찾”아야 한다면서 “무슨 일이나 이쯤하면, 이만하면 괜찮다는 식으로 만족해할 것이 아니라 더 잘할 수 있은 것을 하지 못한데 대하여 안타까워하며 부족점, 미흡한 점들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러한 ‘자책’과 ‘반성’, ‘교훈’, ‘혁신’은 간부를 대상으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모든 당 조직들과 정부, 정권기관, 무력기관들이 우리 인민을 위하여, 인민들에게 더 좋은 내일을 안겨주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며, 정성을 다해 일하도록 더더욱 엄격한 요구성을 제기하고 투쟁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간부들에게 더 높은 요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러한 요구를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하였다.
2017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또 2020년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도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이끄는 중책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최고지도자가 먼저 ‘자책’과 ‘반성’을 하고 ‘혁신’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래 간부들에도 ‘자책’과 ‘반성’, ‘혁신’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전원회의 안건에는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들의 2021년 하반년도 당 조직사상생활 정형에 대하여’가 들어가 있었다.
지난해 6월에 열린 제3차 전원회의에서도 당 중앙지도기관 성원들의 2021년 상반년도 당 조직사상생활 실태를 평가하는 안건이 있었다.
‘당 조직사상생활’이라고 하면 당원으로서 지켜야 할 노동당 규약 상 의무로 노동당의 사상, 정책을 학습하고 정기적으로 생활 평가를 하며 당조직이 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북한은 지위가 높은 간부일수록 당 조직사상생활을 잘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교만성과 자고자대가 싹트고 자라나게 되며 결국 인민 위에 군림하여 권세를 부리고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세도꾼, 관료주의자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북한은 당 조직사상생활 평가를 아예 전원회의 정식 안건으로 채택했다.
중앙 지도간부들부터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당 조직사상생활 실태를 보고하고 평가하면서 모범을 보일 것을 요구하면서 이중잣대가 없도록 한 것이다.
반면 국민을 대상으로는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강조한다.
2013년 1월 제4차 당세포비서대회 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인민대중제일주의’도 그 연장선이다.
그날 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설사 엄중한 과오나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하여도 그에게 99%의 나쁜 점이 있고 단 1%의 좋은 점, 양심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양심을 귀중히 여겨야 하며 대담하게 믿고 포섭하여 재생의 길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북한 문헌을 보면 어느 수해 현장에서 한 주민이 새 집을 받기 위해 멀쩡한 자기 집을 부수다 발각됐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당을 믿고 한 행동이니 처벌하지 말고 새 집을 줄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2020년 8월 23일자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수해를 입은 은파군 대청리 주민에게 군당위원회 청사를 내주고 간부들은 천막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이는 자연재해를 입은 이재민들이 장기간 고통 받는 경우가 흔한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된다.
한국에서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는 약간의 지원금만 가지고 알아서 자기 집을 복구해야 하는 바람에 장기간 천막생활이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언론도 재해가 발생할 때만 떠들썩할 뿐 시간이 흐르면 피해복구 과정이나 이재민의 생활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수해복구를 완료하여 수재민들이 새 집에 입주할 때까지 연일 관심을 집중하는 북한 사회의 모습은 상당히 특이하다.
이런 모습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구 소련과도 다르다.
소련은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에 다민족국가로 복잡한 환경에서 사회주의를 시행하면서 국민에 엄격하고 원칙적이며 관용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이 소련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북한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어도 최대한 대중단체 안에서 비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며 손쉽게 사법처리로 해결하지 않는다.
이처럼 간부에게는 ‘자책과 혁신’을 요구하는 반면 국민에게는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하자는 게 북한 정치의 독특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사회에서 간부들에게 굉장히 강조하는 ‘멸사복무’ 구호 역시 ‘멸사’, 즉 개인을 없애고 국민에 복무하라는 의미다.
국민에 너그러운 굉장히 독특한 체제를 가진 북한 사회는 우리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사회다.
보통 일반적인 나라들을 보면 권력자, 고위관료들은 권세를 휘두르고 특혜를 누리지만 국민은 민생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사태를 봐도 서민들은 생계를 꾸리지 못하고 도탄에 빠졌지만 기득권층은 더 많은 돈을 벌어 벼락부자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6일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 경제에 불평등과 양극화 같은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한 성과에는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난해 11월 17일 페이스북에 “마지막까지 애쓰는 대통령에게 수고한다, 고맙다 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라고 쓰기도 했다.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는 이례적으로 ‘문재인정부 경제분야 36대 성과’라는 자료를 배포했는데 무려 233페이지에 달하는 자화자찬성 홍보자료였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성과를 강조하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화자찬이다’, ‘국민들 삶이 이렇게 어려운데 무슨 말이냐’는 비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면서도 국정성과를 자랑하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했듯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성과는 대부분 GDP, 수출액 등 거시지표로 국민의 삶에 직결되는 내용이 아니다.
국민은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러한 자화자찬성 홍보를 하는 것은 오히려 분노만 키울 뿐이다.
비즈한국 2021년 12월 31일자 보도 「정부가 자찬한 ‘4대 분야 36개 성과’가 국민 공감 못 얻는 이유」는 경제계 관계자를 인용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36대 성과 중 실제로 성과를 거둔 것도 일부 있지만, 국민 생활과 밀접한 사안들은 성과라기보다는 추진했던 정책일 뿐이고, 그나마 사실상 실패했던 정책들이 대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한국의 입장에서 성과보다 교훈 찾기에 집중하는 북한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 수밖에 없다.
김민준 자주시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