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3월 02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3] 한미 국민들은 왜 김정은 위원장 외교에 기대를 갖는가
한국과 미국은 오랜 세월 북한과 대치, 대립하였다. 한미 양국 정부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였고 자국 국민에게도 북한을 적으로 가르쳤다. 따라서 한미 양국 국민들도 북한을 적으로 보면서 북한의 대남, 대미 행동들을 부정적으로 대하였다.
극적으로 바뀐 한미 국민들의 대북 인식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런 태도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한미 국민들이 전폭적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의 외교를 지지하고, 기대하고, 또 어떨 때는 열광한다고까지 할 정도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에 대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KBS 여론조사 결과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이 22.3%,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이 57.7%로 무려 80%의 국민이 긍정적인 변화를 했다고 답했다. MBC 여론조사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에 매우 신뢰가 간다는 응답이 17.1%, 신뢰가 간다는 응답이 60.5%로 무려 77.5%가 신뢰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리얼미터는 북한의 비핵화, 평화 의지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였는데 정상회담 전에는 신뢰 14.7%, 불신 78.3%였던 결과가 회담 후 신뢰 64.7%, 불신 28.3%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KBS 여론조사 결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해 87%가 찬성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과거와 확연히 달랐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을 긍정적으로 대하고 칭찬하는 내용이 쏟아졌고 습관적으로 북한을 비난하던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서울 길거리에 김정은 위원장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을 기원하는 각종 행사들이 거리에서 열렸다.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도 비슷했다. 미국 NBC 방송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이 2017년의 69%에서 38%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우호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지난해 연말 미국 의회 전문매체 더힐의 여론조사 결과 중국-미국 무역전쟁을 제치고 북미정상회담이 2018년 뉴스 1위를 차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하자 CBS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78%가 회담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한미 국민들은 북한의 외교 행보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차기 회담에 기대를 하고 있다. 한미 국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는 점은 지난 연말연초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 대한 반응에서도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0일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감사의 인사를 했으며 청와대는 외교관례를 깨고 친서의 윗부분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정상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친서는 외교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보통은 공개를 하지 않으며 심지어 친서를 교환한다는 사실을 국민이 싫어할 경우 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조차 숨기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청와대 입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굉장히 반갑고 기뻤다는 점, 그리고 친서 공개를 국민이 무척 반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노골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수차례 친서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받을 때마다 트위터에 올리고 공개석상에서 공개했는데 예상 밖의 큰 생일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의 들뜬 표정 그대로였다. 또 ‘아주 멋진 글’, ‘훌륭한 친서’, ‘역사적인 편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며 극찬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정은 위원장에게서 친서를 받은 사실을 미국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 이처럼 공개하여 자신의 지지율 상승을 기대한 것이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대미 접근에 대한 한미 국민의 기대가 굉장히 높게 분출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현상이다. 부정적 대북인식이 긍정적으로 완전히 바뀐 것도 그렇지만 그 정도도 매우 격동적이어서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그 요인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국민 중심 관점
김정은 위원장은 대남, 대미 접근에서 국민을 중심에 놓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 이 점이 한미 국민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들에서 한 발언, 신년사 내용 등을 분석해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는 국민 중심의 관점이라는 일관성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저와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상봉을 간절히 바라고 열렬히 지지 성원하여준 북과 남 온 겨레의 소망과 기대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북남 인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의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하였습니다”, “온 겨레의 공통된 염원과 지향과 의사를 충직히 받들어, 불신과 대결의 북남 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함께 손잡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나가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는 “오늘 오전에 저희 평양시민들의 마음은 대통령님을 환호하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겨레, 북과 남의 인민들 위해서 더 훌륭한 성과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그런 기대에 섞인 그런 환호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이 뜻깊은 상봉이 북남관계의 획기적인 발전과 평화번영을 지향해 나가는 우리의 전진을 더욱 가속시키고 온 겨레에게 다시 한 번 크나큰 신심과 기쁨을 안겨주는 역사적인 계기로 되리라고 확신합니다”라고 하였다. 또 백두산에서는 “오늘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로는 남측 인민들, 해외동포들 와서 백두산을 봐야지요”라고 하였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북남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공고히 하며 온 겨레가 북남관계개선의 덕을 실지로 볼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당면하여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하는 남녘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은 북미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1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념원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우리는 조미 두 나라사이의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계속 고집하며 떠안고 갈 의사가 없으며 하루빨리 과거를 매듭짓고 두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시대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관계수립을 향해 나아갈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은 대남, 대미 접근에서 남북 전체 국민, 북미 양국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는 것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나라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대부분의 언론은 2020년 재선을 노린 행보로 분석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2월 17일 보도에서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재선 당선을 노릴 때 자신의 외교적 성취로 과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사실 어느 자본주의 나라에서나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걸 누가 믿겠는가.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자신의 재선, 그리고 미국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 일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에 나선 이유도 마찬가지다. 물론 촛불 요구 실현도 있지만 기본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행위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만약 촛불 요구를 실현하는 게 기본이라면 있을 수 없는 행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남북 민간단체들이 금강산에서 새해맞이 공동행사를 진행했는데 취재진의 노트북 등 취재장비 소지를 불허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통일부는 한미워킹그룹에서 협의가 완료되지 않아 불허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북한에서 진행된 여러 행사들에 취재진의 노트북 소지가 허용된 점에 비춰 보면 남북 민간교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다.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노트북 하나에도 벌벌 떠는 정부의 모습이 촛불의 요구인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못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하는 남녘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자고 제안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대북제재를 핑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은 대북제재와 무관하다. 지금도 수만 명의 중국인이 북한 관광을 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괜히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서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국내에서 논란을 키우느니 적당히 무난한 것만 하겠다는 모습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촛불의 요구보다는 지지율 올리는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한미 정부와 정치인들의 태도는 북한과 성격부터 완전히 구별된다. 한미 국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대미 접근에 지지를 보내고 기대하며 심지어 열광하기까지 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한미 국민이 바라는 내용을 목표로 제시
위와 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관점은 대남, 대미 접근에서 한국 국민이 바라는 평화·번영·통일과 미국 국민이 바라는 평화·번영을 각각 목표로 제시하게 만든다. 물론 이런 목표는 우리 민족 전체의 바람이기도 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 목표가 평화·번영·통일이라는 점은 4.27 판문점선언의 제목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신년사의 남북관계 관련 내용의 체계도 평화·번영·통일 세 개로 되어 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관계 목표가 평화·번영이라는 점은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 1항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염원에 맞게”라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상호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서 공정한 제안을 내놓고 올바른 협상자세와 문제해결의지를 가지고 임한다면 반드시 서로에게 유익한 종착점에 가닿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북미 양국에게 유익한 종착점이란 평화와 번영을 뜻한다.
이러한 평화·번영·통일 혹은 평화·번영이라는 목표는 공존·공리·공영, 즉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이익을 보자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러한 목표도, 정책도 없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흡수통일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자는 주장만 있었다. 박근혜 정권의 ‘통일대박’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 역시 북한을 체제 전복 대상으로 삼고 파괴할 시도만 하였다. 한미 양국이 이런 정책을 세운 배경에는 힘의 우위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북한을 과소평가하고 자기 국력, 즉 군사력, 경제력이 압도적이기에 북한을 무너뜨리고 약탈할 생각만 한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군사력 차이가 나는 나라들 사이에서 흔히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강대국의 군사적 힘이 약소국을 압도하는 경우 굴복을 요구하고 침략과 약탈, 지배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지금 미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최근 가서명한 주한미군 지원금(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보자. 미국은 독일에게 독일 내 미군기지 사용료를 주고 있다. 독일 영토에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정 반대 태도를 보이고 있다. 명분은 한국을 위해 주둔하니 돈을 내라는 것인데 미국은 다른 나라를 위해 자국민을 군인으로 보내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한때 지원하다가도 자기 이익에 안 맞으면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게 미국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고,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그랬다. 주한미군기지도 미국의 군사전략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한국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주한미군이 미국의 동북아 패권을 위한 전진부대라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군 주둔비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미국은 강대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을 약탈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한다는 게 명백해졌다. 북한이 미국식 접근방식을 쓴다면 미국에게 주한미군 즉각 철수하라, 그간의 대북제재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라, 안 한다면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자본주의를 포기하고 사회주의로 전환하라, 주한미군을 쫓아내라, 그렇지 않으면 핵미사일을 쏘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이게 한국식이다.
한국의 헌법을 보면 제4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하여 흡수통일을 명시하였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북한의 노동당 규약 서문을 보면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하여 체제 통일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물론 최종 목적으로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통일의 조건이 아니라 통일 이후를 이야기한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것처럼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통일을 한다면 당분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존하게 되며 한반도에서 자본주의 정당과 사회주의 정당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북한 노동당이 규약에서 밝힌 최종 목적은 통일 이후 있게 될 이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으로 아무런 문제될 게 없다. 한국의 자본주의 정당도 통일 이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승리하겠다는 목표를 당연히 내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주의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양 체제의 장점만 모은 독특한 체제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이런 역동성과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아무튼 북한은 미국식, 한국식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항복하지 않으면, 사회주의 안 하면 핵미사일을 날리겠다고 위협하면 한미 국민들이 좋아할 수가 없다. 북한은 한미 양국이 북한을 대한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서로 존중하고 함께 이익을 나눠 번영하고 통일하자는 한미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런 점 때문에 한미 국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에 지지와 기대를 보내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
지금까지는 어느 나라든 힘이 있으면 상대를 누르고 힘을 과시해 자신을 추종하게 만들려 하였다. 대표적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전쟁으로 나라를 세웠고 이후로도 수많은 전쟁에 뛰어들었다. 자기 힘을 믿고 무제한한 국제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게 평화는 곧 손해와 동의어였다.
소련이 붕괴하자 소련 남하를 막는 명분으로 주둔하던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문제를 조작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자주화의 기회를 놓쳤다. 이라크의 석유를 탐낸 나머지 대량살상무기를 조작해 침략, 이라크에 미국 대리정권을 세웠다. 유고전 때는 중국 대사관을 폭격해 중국의 반응을 떠봤다. 이처럼 미국은 화해, 공존, 민주화(국제사회에서 민주화란 곧 자주화를 의미한다)의 관점 대신 대결과 전쟁을 택했다. 전 세계가 기대한 평화의 반대를 택하는 호전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힘을 대결과 전쟁에 사용해 상대를 굴복시키고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추종하게 하였다. 이런 미국의 행태는 탈냉전 이후 자주독립의 흐름, 국제 질서의 민주화 흐름을 막았다. 이처럼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남을 괴롭히고 횡포를 부리는 것은 불변의 법칙처럼 됐다.
그런데 북한은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짓밟으려는 노선을 택하지 않았다. 북한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추구했다. 손자병법 3편 모공편에는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는 문구가 나오는데 북한은 최상의 전략을 추구하는 셈이다. 그런데 손자병법이 말하는 ‘굴복’이란 상대가 나를 추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와 달리 상대의 침략 의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평화와 협력, 공존을 추구했다.
이와 관련해 2015년 8월에 있었던 지뢰 폭파사건을 사례로 분석해보자.
2014년 1월 초 박근혜는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한반도 통일시대에 대비하자고 하였다.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으로 볼 때 이는 남북 공동번영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흡수통일을 기초로 한 ‘북한 약탈’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상황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할 아무런 조건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마디로 뜬금없는 ‘통일’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직전인 2013년 12월 21일, 남재준 국정원장은 간부 송년회에서 “오는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근혜는 뜬금없이 ‘통일’을 꺼낸 게 아니라 실제 흡수통일을 할 모종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건과 상황에서 흡수통일을 할 유일한 방법은 전쟁밖에 없었다. 즉, 당시 박근혜 정권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015년 8월 4일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폭발, 한국군인 두 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군은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지뢰를 묻었다고 결론 내리고 응징을 천명했다.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8월 20일에는 포사격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군은 북한이 포사격을 했다며 대응사격을 했지만 실제 북한의 포사격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혹이 있었다.
지뢰 사건이 포사격 사건으로 확대되자 북한은 총참모부 명의로 48시간 이내에 대북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 행동에 들어간다고 통보했고 실제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준전시상태 선포, 전방 부대들이 즉시 작전 진입할 준비태세를 갖추도록 하였다. 그리고 48시간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전격 제안, 다행히도 전쟁 위기가 해소되었다. 한편 박근혜는 협상 타결 당일까지도 북한의 사과를 받아낼 것을 협상단에 지시했지만 남북공동합의문에는 사과가 없어 논란이 되었다. 보수 세력 내에서조차 ‘협상 패배’라며 개탄할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태도를 주목해보자. 북한은 박근혜 정권이 흡수통일을 위한 전쟁준비를 하고 있음을 파악하고 지뢰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전쟁 개시의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제 북한에게는 몇 가지 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전쟁을 개시해 무력통일을 하는 것이다. 한국군도 인정하지만 한국군 단독으로는 북한군을 이길 수 없다. 아마 박근혜 정권은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미군이 당연히 도와줄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전에도 북한과의 전쟁을 피했던 미국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의 전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희박했다.
두 번째 길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여주어 박근혜 정권이 전쟁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길에도 갈림길이 나온다. 하나는 박근혜 정권에게 전쟁 포기를 넘어 완전한 굴복,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을 포기하고 화해 협력의 길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은 두 번째 길의 후자를 선택했다.
당시 한미 양국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북한군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이후 수십 척의 공기부양정을 이용해 특수부대를 남하시켰고 육상에서도 특수부대가 이동하였다고 한다. 또한 잠수함을 무려 50척이나 동시 기동시켜 미군 감시망에서 벗어났으며, 탄도미사일 발사 차량들이 기동했고 대공레이더를 가동하였다. 전례 없는 북한의 대규모 군사행동에 놀란 미군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였고 예정했던 B-52 전략폭격기 무력시위를 취소했으며 기존 한반도 전쟁계획을 폐기하고 다시 짜야 한다고 실토했다. 또 박근혜 정권에게 빨리 협상을 타결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박근혜 정권이 원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보수세력에게조차 비난받을 정도로 협상에서 ‘패배’한 이유가 여기 있다.
패배감에 좌절한 박근혜 정권, 흥분한 보수세력과 달리 북한은 전쟁을 막아낸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8월 2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파국에 처한 북남관계를 화해와 신뢰의 길로 돌려세운 중대한 전환적 계기”라고 높이 평가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을 주도한 황병서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시 노동당 대남비서는 ‘피 흘리지 않고’ 전쟁을 막은 공로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공화국 영웅은 북한 최고의 훈장이다.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
이처럼 북한은 자신의 힘을 직접 사용해 상대를 굴복시키기보다는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긴 결과로 상대를 무너뜨리거나 약탈하려고 하지 않는다. 앞의 김정은 위원장 평가처럼 “화해와 신뢰의 길”을 추구한다.
최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차 북미정상회담 준비 차 북한을 방문해 3일이나 체류하였는데 아마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특히 ‘새로운 길’이 무척 궁금했을 텐데 궁금증을 풀었나 모르겠다. 과거 1998년 금창리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북한 소설 『총대』를 보면 미국 측 외교관이 북한을 방문, 북한 측 협상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우연히 북한의 신무기를 보고 기겁하여 전쟁을 포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나가던 북한군 병사에게 바닷가 암초를 맞춰보라고 했더니 병사가 가지고 있던 평범한 소총을 쐈는데 암초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라 어디까지가 실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외교관에게 숨겨놓은 군사력을 보여주어 전쟁을 포기시키려는 시도는 충분히 했음직하다.
만약 미국이 지금처럼 북한의 비핵화를 끝까지 주장하면 북한은 미국의 비핵화를 요구하며 결국 북미 상호 핵폐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북한이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미국이 손해다.
지난 2015년 8월 15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에서 “핵 억제력을 비롯하여 세계가 알지 못하는 현대적인 최첨단 공격과 방어수단”이 있다고 주장했다. 핵무기는 최첨단 무기의 일부일 뿐이며 더 강력한 무기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세계도 모르고 당연히 북한 국민도 모를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만일에 대비해 가장 강한 무기는 숨기고 싶을 것이므로 이미 보여준 핵무기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에 비건 특별대표가 이 무기를 봤을지 모르겠다.
북한은 미국 외교관을 불러 직접 보여주는 것 외에 작전과 훈련을 통해서도 군사력을 알려준다. 2015년 지뢰사건 당시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전쟁을 막고 상대방에게 타협의 길을 열어주며 이 경우 100% 항복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100% 항복, 100% 굴복을 요구하면 상대가 협상을 포기하고 비이성적인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핵무기는 핵보유국의 패권을 추구하는 수단, 상대를 위협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를 비핵화의 수단, 반전평화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 북한은 힘을 기르되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추구하며 지금도 막강한 핵무력을 토대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회를 계속 주면서 인내와 기다림을 통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 한미 국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를 기대하고 때로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은 자기 힘을 토대로 상대방을 지배하기보다 함께 어울려 잘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싶다. 우리 전통사상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철저히 체화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정책을 추구하는 듯하다. 토머스 홉스의 표현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국제사회의 진리처럼 통용되는 세계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새로운 세상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한미 국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대미 접근에 기대를 갖고 지지하며 때로 열광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가며 앞으로 이런 반응은 더욱 증폭되지 않겠나 전망해 본다.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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