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9월 04일
기사 제목 : 탈북자들이 벌이는 중대·흉악범죄 ① 북한군 출신 ‘엽기 살인마’ 신광호
북한이탈주민, 흔히 우리가 탈북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2021년 기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탈북자 수는 대략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일부 탈북자들이 온갖 범죄를 벌이면서 우리 사회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 들어왔다면 최소한 한국 사회의 법과 질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안을 어기고 북한으로 전단을 날린 박상학을 비롯해, 어떤 탈북자들은 이곳의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다수 탈북자는 조용히 지내지만 일부 탈북자가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그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경찰청 보안국에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8,8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략 20%인 1,697명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탈북자 899명이 온갖 형사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유형별로 살피면 폭력이 603건, 절도 64건, 상해 58건, 위·변조 46건, 사기 35건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탈북자 1,697명 가운데 살인·강간·상해·폭력 등 강력범죄 비율은 40.2%(678명)이었다. 탈북자 사회의 범죄율은 2005년 기준 한국 사회 전체 평균율인 4.3%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실상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 범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탈북자가 저지르는 범죄는 그 특수성상, 자칫 남북대결과 위기를 불러오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실체와 유형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이번 연재를 통해 탈북자 범죄의 위험성, 심각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① 북한군 출신 ‘엽기 살인마’ 신광호
지난 1990년 10월 20일 오전 10시 40분께, 자신을 북한군 중사라고 주장한 신광호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군 당국에 귀순을 요청했다. 귀순 탈북자가 매우 드물던 시기였다. 더구나 군 출신 탈북자라는 점에서 당시 노태우 정권은 신광호를 ‘귀순 용사’로 선전하며 대접했다. 신광호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7천만 원을 정착금, 주택자금으로 지원받아 가정을 꾸렸고 자식까지 낳았다. 그렇게 신광호는 한국 사회에서 잘 자리 잡고 사는 듯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다. 1995년 9월 13일 늦은 밤 11시 50분께, 신광호가 공기총을 들고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댐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던 남녀 시민을 습격한 것이다. 피해 남성 허 씨(24살)는 신광호가 쏜 총탄에 가슴과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박 씨(18살)는 복부와 허리 부근에 총을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심지어 신광호는 총을 맞아 움직이지 못하는 박 씨를 5km나 떨어진 계명산으로 옮겨 성폭행을 저질렀다. 경찰에 붙잡힌 신광호는 강도·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신광호는 군산교도소에서 2005년 9월 17일까지 복역한 뒤 출소했다.
신광호의 얼굴과 살해 행적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가 받는 충격은 대단히 컸다. 신광호의 범죄 방식이 끔찍하고 악마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광호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1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두 번째 범행 장소는 강원도 동해시였다. 2006년 7월 20일 늦은 밤, 신광호는 닭갈비집 사장인 여성 ㄱ 씨와 술을 마시던 중 ㄱ 씨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수차례 내리쳤다. 신광호는 정신을 차리고 도망쳐 문 앞에 이른 ㄱ 씨를 끝까지 쫓았고 목을 졸라 기어이 살해했다.
범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광호는 이어 ㄱ 씨의 시신을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사이코패스, 엽기라는 말도 모자랄 만큼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 뒤 신광호는 강원도 태백으로 도망쳤다가 범행 장소로 돌아와 덜미가 잡혔고 경찰에 구속됐다.
위 범죄 정황은 철저히 신광호의 증언에 따른 진술이다. 죽은 이에게는 입이 없다. 신광호가 피해 여성 ㄱ 씨에게 얼마나 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신광호는 또다시 한국의 법정에 섰다. 신광호에게 적용된 두 번째 범죄 혐의는 살인과 사체 손괴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시신을 훼손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짓밟았다”라며 신광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신광호는 오늘도 감옥 안에 갇혀있다.
신광호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용서받을 수 없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도 반성의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신광호는 ㄱ 씨 유족들의 앞에서 “피해자가 사망한 것은 미안하지만, 당시 피해자의 태도를 생각하면 더 찢어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에 유족들이 얼마나 원통하게 울부짖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신광호가 바깥으로 나와 범죄를 저지르는 것 아니냐며 두려움에 떠는 여론이 적지 않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광호가 아예 못 나올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모범수로 감형받거나, 가석방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신광호가 바깥에 있던 동안 한국의 그 누구나 신광호의 살해 표적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때 온 대한민국이 신광호라는 탈북 범죄자가 설쳐대는 위험지대였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신광호의 사례는 우리 사회가 탈북자 출신 범죄자를 향한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무거운 교훈을 준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