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22.

최근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후 해당 부대 상관들의 조직적인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연일 부실 급식 논란이 터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방의 의무가 있는 나라로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에 갑니다. 이렇기에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에 대해 군대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범죄를 비롯해 갑질 횡포, 부실 급식, 사건 축소·은폐 등으로 군대에서 장병들의 인권침해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대 안의 올곧은 민주주의 구현과 장병들의 인권 개선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이에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지난 2월 1일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에 공개된 판결문을 바탕으로 기획 글 5편을 연재합니다. 

 

 

 

 

 

 

1. 판결문으로 보는 군 내부 갑질·폭력

 


군형법 제62조에서는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경우”를 가혹행위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군대 내에서는 어떤 갑질·폭력이 벌어지고 있을까? 고등군사법원이 제공하는 판결문을 통해 군대 내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키는 대로 해. 소변 본 걸로 세수하고 마셔.”

“너는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똥을 떼어내서 삼켜라.”

 



지난 2019년 4월 4일, 강원도의 한 육군 중대에서 선임이 후임 이등병에게 배설물을 먹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피고인(선임)은 피해자(후임)의 급소인 고환 부위를 여러 차례 걷어차고,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심지어 손가락을 있는 힘껏 뒤로 꺾어 부러뜨리고, 후임의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리쳐 액정을 망가뜨리기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선임은 “(이 사실을) 군 간부들에게 알리면 패버린다”라고 협박했다.

이 상황은 모두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이 내린 판결문[2019고38]에 적힌 군대 내 가혹행위다. 군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이등병이었던 피해자가 얼마나 큰 고통과 모욕을 겪었을지 판결문에 적힌 폭언만 보더라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군대 내 폭력·가혹행위의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입 벌려봐라, 이거 (유리병) 들어가는지 보자.”

“입 벌려봐라, 이빨 다 깨버리게.”


“신고할 수 있으면 해 봐라, 대신 각오하고 신고해야 될 거다. 난 나 혼자 절대 못 죽는다. 어차피 감방 갈 정도면 너 어떻게 해서든 죽이고 들어간다.”

“(휴대폰 세척액) 이거 눈에 뿌려보자. 이거 하면 (감방) 갈게. 눈에 들어가도 흐르는 물에 15초간 씻으면 괜찮단다.”

 



위는 제1함대 보통군사법원이 내린 판결문[2019고8]에 적힌 기록이다. 위 상황은 동해 해상을 항해 중이던 함선 안 디젤기관실에서 벌어졌다. 이밖에도 피고인은 연료를 연결하는 강철 소재 호스로 피해자의 머리를 3차례 때려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XX 무슨 생각으로 그때 휴가 썼냐? XX 너 무슨 생각으로 사냐? 니 병신이냐? 내가 만만하냐? 무슨 생각으로 통신병 지원했냐?”

 

 


위는 제5군단 보통군사법원이 내린 판결문[2020고66]에 적힌 기록이다. 군사경찰병 소속 피고인 ㄱ씨가 피해자인 상병 ㄴ씨에게 한 폭언이다. 군사경찰병이란 “군대 내에서 경찰 직무를 수행하는 병과, 또는 그 병과에 소속된 군인”으로 우리에겐 흔히 ‘헌병’으로 알려져 있다.

피고인 ㄱ씨는 “영창근무 등 임무 수행을 잘 못해 교육을 시키겠다”, “혹한기 준비 기간에 휴가를 냈다”라는 점을 ㄴ씨를 괴롭힌 구실로 댔다. 또한 ㄱ씨는 ㄴ씨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ㄴ씨가) 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공책에 적도록 강요했다.

ㄱ씨가 저지른 폭력·가혹행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판결문에 따르면 ㄱ씨는 후임병인 상병 ㄷ씨, 일병 ㄹ씨, 상병 ㅁ씨를 괴롭혔다. ㄱ씨는 ▲“영창근무 요령이 미흡하다”라며 상병 ㄷ씨의 머리카락을 전기 이발기(바리캉)로 삭발하고 ▲혹한기 훈련에 쓸 방한복을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병 ㄹ씨의 발목을 걷어찼으며 ▲ㅁ씨 때문에 자신이 쉬지 못했다며 ㅁ씨의 머리카락을 전기 이발기로 삭발하는 방식으로 가혹행위를 벌였다.

이번에는 고등군사법원 홈페이지에 주요판결로 올라온 [2019노49] 판결문을 살펴보자. 이 판결문을 보면 군대 내 갑질이 군 간부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판결문에는 대대장인 피고인(중령)이 피해자인 ㄱ대위, ㄴ중위, ㄷ일병에게 가한 갑질·폭력행위가 나와 있다. 피고인은 ㄱ대위에게는 ▲고사리를 캐도록 강요, ㄴ중위에게는 ▲‘너가 병사들하고 다를 게 뭐가 있냐. 병사 핑계 대지 말라’며 폭언, ㄷ일병에게는 ▲운전을 실수했다는 이유로 뒤통수를 때리고 완전군장 상태에서 강제로 연병장(운동장)을 돌게 했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군대의 특성을 생각해볼 때, 피해자들이 군사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2. 판결문이 다루지 않는 군 고위직의 갑질

 


앞서 소개한 사례는 판결문을 통해 공개된 군대 내 가혹행위의 일부다. 이번에는 판결문에서 다루지 않는 군 고위직의 갑질 실태를 살펴보자. 

대표 사례가 육군제2작전사령관(대장)인 박찬주와 그 아내가 공관병(연대장 이상 지휘관이 거주하는 공관의 관리병)들에게 한 갑질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17년 7월 31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폭로하면서 알려졌는데, 피해자만 3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박찬주 부부가 공관병들에게 벌인 갑질과 가혹행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농사일 동원 ▲감 따기 ▲토마토를 얼굴에 집어던지는 등 폭력적인 행동과 폭언 ▲회가 먹고 싶다며 경기 이천에서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회를 사오게 한 점 ▲날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박씨 가족이 먹을 채소를 뽑게 한 점 ▲박찬주 부부 아들에게 줄 간식 만들기 ▲박찬주 부부 아들의 속옷 빨래 시키기 ▲공관병들이 어디에 있는지 전자발찌를 채워 감시 ▲마음에 들지 않는 병사를 GOP(전방초소)로 보내기 등이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박찬주 부부가 공관을 떠난 뒤에도 공관병들을 대상으로 한 군 고위 장성들의 갑질은 계속됐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이른바 ‘공관병 갑질’은 박찬주 부부의 일탈이 아니라, 군 고위직의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듯하다.

가해자로 지목된 박찬주는 “(피해자를) 아들같이 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라며 당당했다. 군사검찰은 박찬주를 기소하지도 않고 무혐의 처리했다. 이밖에 군사검찰은 박찬주 외에 다른 군 간부들이 어떤 갑질을 벌였는지도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 당연히 군사재판도 열리지 않았고 판결문도 남지 않았다. 박찬주 같은 ‘고위직 가해자들’이 반성도 없이 큰소리를 떵떵 칠 수 있는 배경이다.

 

 

3. ‘일제식 갑질’ 벌이는 군대, 대체 누구 편인가?

 

 

글쓴이는 2019년 6월 19일부터 2021년 6월 19일까지를 중심으로 고등군사법원 홈페이지에서 군대 내 갑질·가혹행위와 관련이 있을 만한 주제어로 ‘위계’ ‘갑질’ ‘부하’ ‘폭력’ ‘갈취’ ‘후임’ ‘가혹’을 뽑아 검색해봤다. 

그런데 후임 병사가 선임에게 갑질·폭력을 당했다는 판결은 10건도 채 되지 않았던 반면, 후임이 상관을 모욕했다는 식의 ‘상관 모욕’ 판결은 수십 건이 훌쩍 넘었다. 아울러 앞서 강조했듯 고위급 장성에 의한 갑질·폭력 사례는 판결 자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군인권센터가 폭로한 육군 제21사단 소속 대대장(중령)의 만행을 주시해보자.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대대장은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괴롭히던 병사의 아버지를 부대로 불러, ‘아들이 형사 처벌 받기 싫다면 내가 당신 아들을 괴롭혔다는 얘기를 바깥에 알리지 말라’는 내용으로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만약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군인권센터와 언론을 향해 피해를 호소하지 않았다면 저들의 갑질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장성·간부 등 군 고위직이 갑질을 벌이고 있지만 군 내부에서는 재판 하나 없이 쉬쉬하고 있는 실상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8일, 군법무관 출신 박지훈 변호사는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이렇게 짚었다.

 

 

 

“(군대 내 범죄는) 지금 드러난 바에 따르면 제도적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적 측면이 강하다. 군대 내에서 피해자나 가해자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의 입장에선) 잘만 얘기하면 사건을 무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독립언론 ‘평범한미디어’를 운영하는 박효영 기자의 말도 주목해봄 직하다. 박효영 기자는 지난 2017년, 큰 논란이 된 해병대 신고식과 관련해 “고봉으로 밥을 먹게 하고. 빵 8봉지, 초콜릿 파이 1상자, 우유 3팩, 컵라면 2개. 이걸 한 번에 다 먹인다는 것은 범죄 행위다. 그야말로 ‘식고문’이 맞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일제식 군기 문화가 체화된 사람들이 군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왜곡된 상명하복과 전투태세론을 내세워 반공주의적인 군대 패러다임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징집 병사들은 이기주의적이고 약육강식적인 사고방식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다.”
-박효영 ‘평범한미디어’ 기자가 전하는 말.

 

 

 

군대 내 갑질·폭력을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독립군을 잔혹하게 괴롭히고 고문하던 일제의 방식이 그대로 이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독립군을 토벌하던 ‘친일파 출신’들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고위직을 꿰찼고, 병사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일제식 ‘군기’가 뿌리내렸다. 우리 군은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 악습을 지금도 문화랍시고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군사법원의 판결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죄를 뉘우치고 있다”라며 가해자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잦다.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단죄하는 군 사법질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피해자들은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나 언론에 제보하면서 ‘군 고위직의 보복’이 없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해자들이 ‘신고할 테면 해봐라. 너가 뭘 할 수 있겠냐?’라며 피해자들의 절규를 비웃고 있지는 않을지 우려가 높다. 이래서야 군대 내 갑질·가혹행위는 영영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이다. 군이 주도하는 자체 개혁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국민과 정치권이 주도하는 강력하고 시급한 군 개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오늘이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