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4월 12일
기사 제목 : [취재수첩] “오세훈에게 단 한 표도 주지 맙시다!”라고 외치는 20·30대들
“오세훈 후보에게 단 한 표도 주지 맙시다!”
“오세훈 후보가 어떤 사람입니까?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는 계속 발뺌하고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퇴해놓고 왜 다시 나옵니까? 사퇴한 사람이면 사퇴한 대로 자신의 죄를 반성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뽑지 맙시다!”
지난 4월 1일, 미아사거리 주변에서 ‘오세훈낙선 오락실천단’이 외친 말이다. 오락실천단이란 오세훈 후보의 성인 ‘오’에 한자인 떨어질 락(落)을 결합한 표현이다. 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오락실천단의 활동은 이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고, 수십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뿌렸다.
나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미아사거리역 주변을 찾았다. 왜 오세훈 후보를 뽑으면 안 된다는 것인지 직접 대학생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오후 1시쯤, 오세훈 후보의 유세가 예정된 미아사거리에서 누군가 외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고 시민들이 지날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소리 높여 외치는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오락실천단 단원들이었다.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단원들의 나이는 제각각 달라 보였다. 그런데도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단원들이 오세훈 후보가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시절 직을 걸고 낸 ‘무상급식 반대 투표’로 무상급식에서 배제될 뻔한 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오세훈 당시 시장이 낸 무상급식 반대 투표가 통과됐다면 지금 같은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은 물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
10년 전 10대였던 학생들은 무상급식의 직접 당사자였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무상급식 논의에서 비켜나야 했다. 그랬던 학생들이 이제는 대한민국의 어엿한 성인 유권자가 되어 오세훈 후보를 향해 목소리를 내게 된 셈이다.
이날은 20도를 훌쩍 넘은 날이었고 꽤 더웠다. 그런데도 단원들은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켰고 마스크 속으로 숨을 거칠
게 몰아쉬면서도 목소리를 계속 높여갔다. 특히 인상에 남은 발언을 아래에 소개한다.
“오세훈 후보가 자기 손으로 서울시장직을 사퇴해놓고 이곳에 나와서 표를 구걸하는 것이 서울시민으로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무상급식을 반대해놓고 아이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놓고 이제 와서 서울시장으로 다시 나온다는 것이 그때의 초등학생, 지금의 유권자로서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오세훈 후보를 떨어트리고 싶습니다.”
“저는 비강남권에 살고 있고, 월세로 낼 돈도 없고 등록금도 없어서 항상 알바 자리 전전하고 취직하기 힘든 여느 청년들과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런데 오세훈은 내는 정책마다 이른바 강남 시민만을 위한 정책만을 내고 있습니다. 서울시민 대부분은 비강남권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강남 주민만을 위해 주려는 사람을 시장으로 뽑아야 하는 것입니까?”
드디어 오세훈 후보가 탄 유세차량이 도착했다. 나는 헐레벌떡 뛰어 오세훈 후보가 왔다는 현대백화점 미아점 앞으로 갔다. 그런데 오세훈 후보 측의 선거 유세차량 근처에 오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오세훈 후보가 미아사거리 주변에 높은 주상복합 건물을 짓고 지하를 파서 대대적으로 재개발을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오락실천단 단원들은 재개발을 강조하는 오세훈 후보와 달리 이렇게 외쳤다.
“용산을 개발한다고 용산 주민을 내쫓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용산참사를 일으킨 본인이 바로 오세훈입니다”
“무리한 재개발 정책으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 놓고 임차인들의 폭력 때문에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전혀 사람들을,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오세훈은 서울 시민들을 위해서 일하고 헌신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최근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은 어떻습니까? 서울시장이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땅 투기를 했고 36억 원의 부당한 이익을 취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세훈 후보가 내놓은 재개발 공약은 1년 조금 넘는 시장 재임 동안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더구나 용산참사 책임,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을 피할 수 없는 당사자가 반성은커녕 재개발을 외치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불편했다.
지난 3월 29일, 오세훈 후보는 티비 토론에서 “기억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라는 말을 꺼냈다. 오세훈 후보는 최소한 ‘용산참사의 기억’을 떠올려야 했고 재개발을 밀어붙여 서울시민을 죽음으로 내몬 점을 사죄하고 반성해야 했다. 지난 2018년, 경찰 진상조사위는 “용산참사는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었다”라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오세훈 후보는 아직도 철거민이 폭력을 저질렀다며 경찰이 시민을 죽인 것이 정당하다는 듯 주장한다.
오락실천단을 찍어 누르려는 듯한 오세훈 후보 측의 대응 방식도 큰 문제였다.
오세훈 후보 지지자들과 극우 성향 유튜버들은 학생들이 소리를 높일 때면 “공산주의자”, “빨갱이” 같은 색깔론 공격과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마구 쏟아냈다. 오세훈 후보 지지층에 철 지난 색깔론이 결합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런데 오세훈 후보 측은 유세차량 근처에 경찰을 불러들여 학생들의 접근을 틀어막았다. 경찰은 카메라로 학생들의 얼굴을 찍었다. 학생들이 “불법 채증하셨잖아요”라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발뺌했다.
반면 경찰은 학생들에게 폭언과 거친 행동을 쏟아내는 오세훈 후보 지지자들, 극우 성향 유튜버에게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극과 극으로 갈린 경찰의 ‘차별’은 기자가 보기에도 매우 뚜렷해 보였다. 오세훈 후보 유세차량 근처에는 지지자들이 방역지침을 무시하며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방역지침을 준수하기 위해선 지지자들을 해산시켰어야 하는데, 경찰은 이 또한 하지 않았다. 이렇듯 경찰은 이상하리만치 오락실천단만을 경계하고 있었다.
오세훈 후보 측 차량 바로 옆에서 외치던 한 학생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경찰은 학생이 강하게 거부해도 팔짱을 끼
웠고, 학생을 들다시피 해 억지로 맞은편 도로로 옮겼다. 학생들이 거세게 항의해도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세훈!, 오세훈!, 오세훈!” 이날 오세훈 후보가 탄 유세차량에서 연거푸 흘러나온 말이다. 이런 쩌렁쩌렁한 마이크 소리가 퍼진 것과는 정반대로, 학생들은 확성기조차 들지 못했고 목소리도 쉬어 갈라졌다. 하지만 학생들의 외침에는 절박함과 당당함이 있었다.
오세훈 후보는 지난날 전직 시장으로서 서울 시정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민 6명을 죽음으로 몬 용삼참사를 비롯해 ▲부채 8천억 원을 남긴 경인 아라뱃길, ▲5400억 원을 들였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고 매년 유지비로 엄청난 적자에 허덕이는 세빛둥둥섬 건설, ▲역사가 지하에 있는데 지붕을 씌우지 않아 생긴 강남역·광화문역 침수, ▲우면산 산사태 등이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는 시정 실패에 입을 꾹 닫고 있다. 이렇다 보니 서울시장 재도전에 나선 오세훈 후보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을 듯하다.
이날 오세훈 후보와 유세차량은 오후 2시를 약간 넘어 현장을 휙 떠났다. 뒤꽁무니를 내보이며 도망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온갖 욕설과 방해에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낸 대학생들의 당당한 모습과 대비돼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승패가 어떻게 갈릴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오락실천단은 본 선거일인 4월 7일 전까지 활동을 이어간다고 한다. 여러분께서도 오락실천단과 학생들이 내는 외침을 주시해보면 좋을 듯하다.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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