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4월 03일
기사 제목 : [아침햇살120] 북한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의 성격 1
최근 북한과 미국 사이에 여러 차례의 공방이 벌어졌다. 미국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했고 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북한에 대한 공세를 펴기도 했다. 북한은 순항미사일과 신형전술유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은 미사일 발사를 두고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그러자 북한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리병철 조선노동당 비서가 미국을 규탄하는 담화를 발표하며 대응했다.
이번 북미 공방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후 첫 북미 공방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바이든 정권 동안 북미관계가 어떻게 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북미 공방을 보며 상당히 새롭고 의아하고 흥미로운 건 북한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다. 북한은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른 태도로 미국을 대한다.
1. 고압적인 태도
가장 먼저, 북한은 미국을 아주 고압적으로 대한다. 고압적이라는 말은 위에서 아래를 내리누르는 듯한 태도를 말한다. 북한은 미국을 무시하고 아주 흉측한 것을 짓밟아 뭉개버리는 듯이 대했다.
일단 북한이 미국에 한 말을 살펴보자.
북한은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겠다고 이야기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은 3월 15일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최선희 제1부상은 3월 17일에 “미국은 2월 중순부터 뉴욕을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와의 접촉을 시도해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의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다”라고 망신을 주었다. 리병철 비서는 3월 26일 “미국의 새 정권이 분명 첫 시작을 잘못 떼었다”라며 한심해하였다. 북한이 ‘까불지 마라. 대화하자고 해도 무시하겠다’라며 완전히 미국을 깔아뭉갠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을 깔아뭉개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은 2019년 겨울 이른바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군사행동을 할까 봐 발칵 뒤집혔다.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2019년 12월 9일 “트럼프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자기는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놀랄 것이다. 놀라라고 하는 일인데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며 전전긍긍하는 미국을 비웃었다.
전 세계에서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나라는 없다. 오직 북한만이 미국을 이렇게 대한다. 하지만 미국은 온갖 굴욕을 다 당하면서도 북한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 NBC 보도에 따르면 올해 2월 미 법무부가 북한을 ‘범죄조직’으로 묘사하자 백악관 참모들이 발끈했다고도 한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으로 꼽히는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책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주한미군 사령관 출신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을 보였다고 말한 바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군 고위 장성의 대표적인 출세코스인데, 그런 엘리트 코스를 밟는 이들이 한반도에 와서 예외 없이 북한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4성 장군이 어디서 이런 모욕을 당하겠는가.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북한을 공격할 수 없으니 속이 뒤틀리지 않을 수 있을까. 모욕감, 모멸감을 참을 수밖에 없다 보니 정신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이번엔 북한의 행동을 보자.
북한은 8차 당대회에서 “조선반도의 정세격화는 곧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안보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리병철 비서는 미국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비난하자 “우리는 계속하여 가장 철저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병철 비서는 조선노동당 군수공업부 부장이다. 북한이 앞으로 어떤 무기를 선보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이 뭐라 하든 말든 대놓고 핵실험도 하고 미사일 실험도 했다. 이번에도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아마도 상당히 위협을 느낀 듯하다.
사실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어느 나라나 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굳이 대응하지 않고 무시해도 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단거리 미사일은 어느 나라나 발사한다”라며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애써 모른척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건 대미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이든 정권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일일이 반응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북한의 협상력을 키워주었다. 미국은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미군 간부들이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대니얼 카블러 미 육군 우주미사일방어사령관은 2020년 8월 4일 “우리는 북한에서 나오는 모든 미사일을 최상의 중대 위협으로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탄두에 무엇이 있는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 단거리 미사일일지, 아니면 미 본토까지 날아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일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초긴장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이렇게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참에 역지사지를 배워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미국이 한반도에 북한을 상대로 핵폭격기나 항공모함을 들이밀어 선제핵타격 훈련을 하면 북한은 얼마나 위협을 느꼈겠는가. 북한은 자신이 핵무장을 하게 된 이유가 바로 미국의 핵전쟁 위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단거리 미사일에 놀라 북한을 규탄하는 모습은 북한의 핵무장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미국이 북한의 핵공격 위협을 느끼고 있으니 입장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졌고 지구 전역을 공격할 미사일도 가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전쟁상태다. 지금은 단지 전쟁을 쉬고 있을 뿐이다. 북한과 미국은 외교 관계를 맺은 것도 없어서 북한이 미국을 공격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니 미국은 초긴장할 수밖에 없고 ‘발편잠’을 잘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나 중국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고 해서 이렇게 긴장상태에 빠지진 않는다. 미국은 중국·러시아와는 수교도 맺었고 정치적 교류도 한다. 전쟁상태인 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가 군사행동을 하면 얼마간 군사 긴장이 고조되겠지만,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듯한 초긴장상태로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다.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받는 위협을 줄이기 위해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수교를 맺어 북미관계를 발전시키면 된다.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도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이 북미관계 정상화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을 아주 고압적인 태도, 공격적인 행동으로 다루고 미국은 불안과 초긴장 상태에 빠지게 된 건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
2. 여유작작한 태도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여유작작한 모습을 보인다.
3월 8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북한은 8차 당대회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에선 전국 1,347개 단체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국회의원 35명도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미연합훈련은 강행됐다.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에 상륙해 평양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상태에 놓인 듯했다.
그런데, 한미연합훈련을 코앞에 둔 때에 북한이 뜻밖의 행보를 보였다. 3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에 걸쳐 시·군 당 책임비서 강습회를 연 것이다. 북한은 시·군 당 책임비서 강습회에서 “자기 시·군을 부유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낙원으로 변모”시키자며 사회주의 건설을 이야기했다. 미국의 전쟁 훈련에 북한은 건설, 발전으로 대답한 것이다.
3월 17일과 18일엔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즈음 북한은 평양시 1만 세대 주택 건설 착공식을 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착공식에서 “더욱 아름다워지고 웅장해질 우리 수도의 내일을 위하여, 그 속에서 새 문명을 마음껏 창조하고 향유할 우리의 부모형제들과 자녀들을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자고 발언했다.
이 착공식에선 상당히 독특한 장면이 펼쳐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설 지휘부 깃발을 김정관 국방상에게 전달한 것이다. 군이 건설 과제를 맡으면 통상 사단쯤 되는 부대가 임무를 맡아 나선다. 그런데 이번 평양 주택 건설의 지휘부는 어느 사단, 어느 부대가 아니라 국방상이 직접 맡았다. 국방상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방부 장관이다. 평양 주택 건설을 북한군의 핵심사업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군대의 기본 사명은 국토를 보위하는 것이다. 모든 군과 부대는 자기가 책임질 지역과 임무가 촘촘히 짜여 있다. 어느 부대를 빼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건설을 위해서 전 군에서 부대를 차출해 안보 공백을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북은 전 군에서 군인을 건설에 동원하려 한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 두 가지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첫째, 군 작전에서 공백이 생기더라도 건설이 더 시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다. 둘째는 군인들을 대규모로 빼도 군 태세에 지장이 없는 경우다.
북한의 현실이 어느 쪽인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미국의 태도를 보고 추론해 볼 수는 있다.
만약 북한이 경제 발전이 시급해서 군 병력을 무리하게 동원한 거라면 미국이 어떻게 할까? 아마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압박해 북한의 계획을 망가뜨릴 것이다. 미국이 제재를 강화하면서 군사 공세를 강화하면 북한은 국가 보위를 위해 경제 건설에 군인을 동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북한이 계획한 경제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행보는 다르다. 북한이 대담하게 경제건설을 추진하면서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는 데도 미국은 딱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 내에서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미국 민주당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과 로 칸나 하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신속히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제니 타운 38노스 국장 또한 “바이든 정부가 행동지향적이며 지금까지와(오바마·트럼프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을 북한에 줄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선희 제1부상은 미국이 대화를 간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5일에 한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가장 큰 대외 정책 위협”이라고 고백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또한 북한이 전례 없는 위협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을 하면서도 훈련의 이름조차 짓지 못하고 있다. 보수언론 이데일리는 군사 작전명은 나름의 의미가 있는데 한미연합훈련은 이름이 실종됐다며 비난을 늘어놓았다. 미국이 훈련 이름도 정하지 못한 건 북한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 건설을 위해 군대를 대규모 동원하는 상황인데,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두려워한다. 북한이 군을 대규모로 동원해도 대미군사태세에 허점은커녕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북한이 미국에 상당한 군사적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한은 “가장 철저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키우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가장 철저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이란 말은 북한이 지금도 군사적 우위에 있으며 앞으로 군사적 우세를 철저하고 압도적으로 벌리겠다는 의미이다. 북한에 절절매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 북한의 주장이 빈말은 아닌 듯하다. 북한은 대규모 군을 경제건설에 동원해도 미국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갈등이 증폭되는 와중에도 시·군 당 비서 대회를 열고 평양시 1만 세대 건설 착공식을 여는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 같다.
3. 갖고 논다
또한 북한은 미국을 우롱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이 미국을 가지고 논 대표적인 사례로 금창리 사건을 들 수 있다. 1998년 미국은 인공위성 사진을 제시하며 북한이 평안북도 금창리에 비밀 지하 핵시설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북한이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가지지 않고 있을 때였다. 북한은 금창리에 지하 핵시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위협까지 해가며 금창리를 살펴봐야겠다고 우겼다. 4개월 동안의 협상 끝에 북한은 참관료를 내고 참관하는 건 가능하다고 했고 미국은 이를 수용했다. 그렇게 미국이 1999년 5월 식량 60만 톤 제공을 약속하고 금창리를 방문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금창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 참관단은 비싼 값을 내고 텅 빈 동굴만 보고 돌아오게 됐다. 미국이 완전히 우롱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참으로 시사점이 크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이 이르면 3일이나 3주 늦어도 3년 안에 붕괴한다는 3-3-3 가설을 내돌리고 있었다. 미국은 기세등등해서 북한에 공세를 펴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에 공세적으로 맞섰다. 그 결과 북한은 금창리 사건에서도 미국에 승리를 거뒀다. 북한은 미국마저 쥐락펴락한다는 걸 보여주며 자기 체제가 강고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북한 국민 입장에서는 얼마나 통쾌했겠는가. 아마도 미국을 이겼다는 긍지가 하늘을 찌를 듯했을 것이다.
여기서 문재인 정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3월 2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이 성명에서 동해를 동해라고 표기했다. 그런데 일본이 미국에 항의했고 이에 미국은 동해를 일본해로 고쳐 썼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할 만한 일이지만, 우리 정부는 항의 한번 변변히 못 하고 있다. 외교부가 기껏 밝힌 입장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자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방위비분담금 협상도 비슷하다. 정부는 방위비분담금 13.9% 인상을 합의했는데, 정말 굴욕적인 협상이다. 한미는 앞으로 한국의 국방비 인상률에 맞추어 방위비분담금도 인상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비를 매년 6~7% 정도씩 인상하고 있다. 따져보면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국방비를 대폭 인상한 이유는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면서 미국 무기를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의존도를 낮춰 자주국방을 실현하겠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 국방비가 주한미군 지원금을 높이는 근거로 사용됐다. 국방비 인상률이 큰 이유도 미국 무기를 사주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 때문에 주한미군 지원금도 대폭 인상해줘야 한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중으로 부담을 떠안는 꼴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협상을 이뤘다고 자평한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태도는 미국의 횡포에 맞서 들고 일어난 촛불민심에 모욕감과 민족적 열등감을 심어주는 행태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방위비분담금은 1% 이상 인상할 수 없다. 우리가 미국 무기까지 사주는데 방위비분담금까지 인상하는 건 절대로 안 된다. 일본도 1% 정도로 방위비분담금을 인상했다. 우리는 주한미군에 토지나 수도, 전기도 모두 대주고 있다. 소파(SOFA) 협정을 봐도 원래 주둔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필요하면 방위비분담금을 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입장을 관철했으면 우리 국민이 어떻게 느꼈겠는가. 국익 외교를 실현했다며 적극 지지하고 긍지 높게 여겼을 것이다. 이걸 비교해보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금창리 사건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국민의 단결력과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는 커다란 정치효과를 얻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갖고 노는 일은 또 있었다. 2019년 2월 하노이회담에서다.
하노이회담을 복기해보자.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면서 미국에 민수 분야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북한은 자신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복원해도 좋다는 ‘스냅백’ 조건도 받아들였다. 일방적이라고 할만큼 미국에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미국은 이 안을 받지 않았다.
핵시설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일단 영변핵시설을 해체하면 이 시설을 복구해 다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은 말 한마디면 대북제재를 재개할 수 있다. 미국엔 매우 유리하고 북한엔 매우 불리한 안이다. 그래서 북한은 하노이회담을 “일대 모험”이라고 이야기했다. 미국이 제재 해제를 해주는 시늉을 하면서 북한 핵시설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하노이에서 한 제안을 보고 그만큼 제재 완화가 시급하다는 식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정말 영변핵시설을 내줄 만큼 제재 완화가 절실했다면, 하노이회담 이후에도 같은 제안을 재차 내밀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하노이제안을 다시는 내밀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이 하노이제안을 받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는 듯한 태도다.
이런 정황을 보면 북한은 하노이회담에서 미국을 가지고 논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이 하노이에서 뭔가 미국에 작전을 폈던 것이 아닐까?
작전을 편 것이라면, 북한이 하노이회담에서 얻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 미국은 당시 북한이 핵을 보유한 게 잘못이라며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비핵화 논리에 동조하는 나라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노이회담은 국제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북한은 모험이라고 할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했는데 미국이 걷어차버렸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려 해도 미국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비핵화가 물 건너갔다. 비핵화를 가로막는 건 미국이다’라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대체 무슨 작전을 편 것일까? 미국은 하노이회담을 결렬시키면서 영변+알파(α)를 요구했다. 대북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영변 핵시설뿐만 아니라 숨겨진 핵시설까지 추가로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하노이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다른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몰랐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영변 외에 비밀 핵시설을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우리가 알았다는 것에 대해 그들이 놀랐다고 생각한다”라고 의기양양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걸 대단한 성과인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들었다는 그 정보는 북한에서 일부러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보면 하노이회담 이후 미국에서 그 누구도 영변 외에 핵시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 북미회담이 깨진 결정적 이유인데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이 역정보를 흘린 것이라면 그 이유는 미국이 하노이제안을 거부하게끔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노이회담 당시 북한 통역관이 상당히 주목받았던 일이 있다. 싱가포르 회담 통역관은 김주성이라는 남성이었는데, 하노이회담에서는 신혜영이라는 여성 통역관으로 교체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보도된 것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일은 뭐든지 화제가 되곤 하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통역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관심사가 아니었다. 상당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통역사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통역사를 주목하게 된 것은 아마도 미국이 북한 통역사로부터 어떤 정보를 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북한이 통역사를 통해 숨겨진 비밀 핵시설이 있다는 역정보를 흘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북한은 통역사가 제공해선 안 될 정보를 흘린 것처럼 책임을 물어 통역사를 교체하는 연극을 했을 수 있다. 미국은 그 모습을 보고 통역사에게서 들은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에게 “정치인들은 배우와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트럼프가 “진심으로 정말 현명하고, 매우 비밀스럽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기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의 답변을 듣더니 “정치인들은 배우와 같다”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하노이회담을 봐도 “정치인들은 배우와 같다”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은 참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북한은 미국을 갖고 놀기 위해서 완벽한 연극을 짰고 미국은 여기에 완전히 걸려든 셈이다. 미국은 북한에 낚여 자신들에게 엄청나게 유리했던 하노이제안을 스스로 걷어참으로써 큰 낭패를 보게 되었다. 영변핵시설을 직접 참관했던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영변 일체를 제거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북한의 제안을 수용했어야 한다”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북한은 하노이회담이 결렬되자 다시는 하노이 같은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반면 북한은 하노이에서 굉장한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당당히 거절할 확고부동한 명분을 얻은 것이다. 미국이 선제조치를 하지 않으면 비핵화도 없다는 논리가 국제사회에 통용되게 됐다. 이런 사례를 보면 북한은 미국을 완전히 손안에 쥐고 갖고 노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