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3년 04월 07일
기사 제목 : [윤석열 퇴진 23가지 이유 ㉓] 농민의 삶에 관심 없는 대통령
쌀값이 45년여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4월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이자, 2016년 박근혜의 거부권 행사 뒤 약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민생 법안’이라는 점에서 윤 정권의 본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쌀값 폭락에 나 몰라라 하는 대통령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산지 쌀값(도정한 쌀 20㎏의 도맷값)은 작년 9월 25일 기준 4만393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4.9% 폭락(쌀 완전자급이 달성되고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7년 이후 최대 하락 폭)하는 등 최근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쌀 가격 하락에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물가가 폭등하고, 이자와 필수농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쌀값 하락은 농민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에 개정안이 올라온 양곡관리법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도 대비 5~8% 이상 떨어지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 논의과정에서 기준 요건이 후퇴하고, 쌀 재배면적이 늘어나서 쌀생산이 늘어나는 바람에 쌀값이 떨어진 것이라면 정부는 매입을 안 할 수도 있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농민들은 ‘누더기 법안’이라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윤 대통령은 거부했다.
윤 대통령은 시장 논리 운운하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는 후보 시절 본인의 말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2021년 12월 16일, 당시 윤석열 대선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쌀값의 하락이 심상치 않다”라며 “정부는 즉각 과잉 생산된 쌀을 추가 매수해서 쌀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추가 매수를 촉구했다. 이 말을 하고 난 뒤 지금까지 정부의 시장매수 기준이 바뀐 것도 아니다.
결국 윤 대통령에게 농정에 대한 고민이나 철학 등은 없었음을 보여준다. 농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쇼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아가 국힘당 지도부에서는 쌀값 폭락에 대한 대책으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더 많은 밥을 남겨서 더 많이 버리기’ 등의 언급이 나와 농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현재의 집권세력이 얼마나 농업에 관심이 없는지, 농민의 삶에 무지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농민의 삶에는 관심 없는 대통령
애당초 윤 대통령은 농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난해 말 윤 대통령이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달한 연말 선물세트가 수입농산물 가공식품들로 구성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정부는 일부 공무원의 실수인 척 넘기려 했지만, 농촌의 현실과 농업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정부였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말 선물세트는 농민들에게도 전달되었을 텐데 그 농부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이미 윤 대통령은 농업 관련 공약을 1년도 채 되지 않아 헌신짝 집어 던지듯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영비 부담 완화를 위한 비료 가격 인상 차액 지원’을 공약했다. 하지만 윤 정부 들어서 첫 추경 예산안에서 비료 가격 인상분 지원에 대한 정부 부담은 오히려 대폭 축소될 뻔했다. 윤석열 정부는 애당초 30%였던 정부 분담을 10%로 줄여 인상분 지원에 들어가는 비용 대부분을 지방자치단체 등에 전가하려 했다(비료 가격 인상분 지원 예산은 국회를 거치며 일부 복구됨).
올해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역시 전년 대비 2.4% 증액되는 데 그쳤다. 비료값, 농자재값, 기름값이 급등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5%를 넘어선 상황에서 2.4% 인상률은 농업 예산의 축소와 다름없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식량 주권확보, 식량 자급 목표치 달성 등을 공약한 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업, 농민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예산은 공약과 반대 방향으로 짜진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식량 주권확보 사업은 ‘가루쌀’ 사업에 치중돼 있다. 가루쌀은 기존 쌀과 달리 물에 불리지 않고도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쌀 품종이다. 이를 통해 수입 밀의 일정 부분을 대체해 식량자급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루쌀 도입과 같은 지엽적인 정책으로 얼마나 식량 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식량 자급 목표치를 달성하겠다는 구호와 상반되게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농업을 포기하고 공산품 수출하자’는 식의 자유무역협정에 여전히 열을 올리고 있다.
윤 대통령의 공약 중 가장 핵심적인 것 중 하나가 ‘직불금(정부가 농업인에게 직접 소득을 보조하여 주는 일종의 보조금) 예산 5조 원 확보’ 였다. 올해 정부 예산에 반영된 전체 직불금 예산은 2조8,000억 원으로, 지난해(2조4,000억 원)에 비해 4,000억 원 남짓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구체적인 실현 계획과 방법이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자 4월 6일 부랴부랴 직불금 관련 예산을 2027년 5조 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등 떠밀려 내놓은 정책이, 그것도 본인의 임기 말인 2027년에 가서 얼마나 지켜질지 미지수다.
비단 농업문제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농업은 단순히 하나의 산업으로 간주 되어서는 안 된다. 식량과 곡물 가격이 언제 급등할지 모르며, 안보와도 직결된다. 더군다나 사료 포함 식량자급률 20%, 그나마도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이 5.4%에 불과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농업 지키기’는 절체절명의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농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대통령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둘 순 없는 일이다.
박영준 주권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