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2년 10월 28일
기사 제목 : [12조] 계급노선과 미국의 ‘레짐 체인지’
북한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교재는 북한 헌법이다.
헌법을 분석하다보면 북한 사회의 기본 이념과 국가 정체성, 사회 구조와 작동 원리, 국가 정책과 노선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nk투데이 편집부는 북한 헌법을 하나하나 파헤쳐보는 연재를 기획하였다.
분석할 북한 헌법은 현재 한국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가장 최신판인 2019년 8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기법은 한국의 맞춤법을 따르되 불가피한 경우 북한 표기를 그대로 두었다.
북한 헌법은 통일부, 법무부, 법제처가 공동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https://unilaw.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제12조 국가는 계급노선을 견지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를 강화하여 내외 적대분자들의 파괴 책동으로부터 인민주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굳건히 보위한다.
제13조 국가는 군중노선을 구현하여 대중 속에 들어가 문제해결의 방도를 찾으며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워 대중의 정신력과 창조력을 높이 발양시키는 혁명적 사업방법을 견지한다.
12조와 13조는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에 관한 내용이다.
계급노선이란 혁명의 영도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노선이다.
군중노선이란 군중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고 군중의 힘을 통해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선이다.
북한은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올바르게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계급노선만 앞세우면 좌편향, 군중노선만 앞세우면 우편향이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의 이익과 군중의 이익을 어떤 식으로 보장하느냐에 따라 좌우경 편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반반씩 하라는 것도 아니며 계급노선을 확실히 지키면서 여기에 군중노선을 결합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게 북한의 이론이다.
얼핏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의 이익이나 군중의 이익이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는데 헌법 12조와 13조의 내용을 통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우선 12조에는 계급노선과 함께 ▲인민민주주의 독재 ▲인민주권과 사회주의 제도 보위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독재를 민주주의의 반대말 정도로 이해하면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함께 들어간 ‘인민민주주의 독재’라는 말은 형용모순으로 들린다.
그러나 독재를 ‘권력의 독점’으로 이해하면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개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래 카를 마르크스는 1850년 저서 『프랑스의 계급투쟁 1848-1850』(Die Klassenkämpfe in Frankreich 1848–1850)에서 처음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Klassendiktatur des Proletariat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1875년 저서 『고타강령비판』(Kritik des Gothaer Programms)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 형태를 ‘프롤레타리아 독재(Diktatur des Proletariats)’라고 규정하였다.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 계급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권력을 가진다’는 의미는 정권을 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나라의 형편을 보면 노동자 계급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아서 독자적으로 권력을 쥐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농민, 민족자본가, 양심적 지식인, 소자산가 등의 연합 정권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를 ‘인민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따라서 ‘인민민주주의 독재’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민중의 연합 정권만이 권력을 독점한다는 개념이 된다.
현재 북한은 자본가 계급이 완전히 사라졌으므로 연합 정권에 민족자본가나 소자산가가 있지는 않으며 노동당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노동당의 상징 도안도 마치, 낫, 붓을 겹쳐놓은 형태다.
북한은 인민민주주의 독재에 따라 노동당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으며 자본가 계급의 정당을 허용하지 않는다.
헌법 12조에 “내외 적대분자들의 파괴 책동으로부터 인민주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굳건히 보위한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북한이 자본가 계급의 사회주의 전복 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북한 내부에는 자본가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적대분자’가 가리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제국주의 국가다.
북한은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가 북한의 ‘인민주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뒤집기 위해 계속 시도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즉 북한 정권을 전복하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다.
정리하자면 미국 등의 체제 전복 시도와 파괴 책동을 막아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북한 정권과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며 이것이 곧 북한이 내세우는 계급노선의 중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계속 계급교양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