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 2021년 03월 18일
기사 제목 : [북한은 왜?] 천리마운동 ① 북한 대중운동의 표본, 천리마 운동
북한에 강제노동이 정말 존재할까?
– 대중의 힘을 발동시킨 천리마운동
북한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서 국민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김일성 주석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대중의 창조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며 그들의 열성과 창발성과 재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라며 국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 편집부, “북한 ‘조선로동당’대회 주요문헌집”, 돌베게, 1988, 192쪽
어떤 사람들은 북한은 국민들을 동원해 강제노동을 시킨다고 말한다.
북한이 국민들을 강제로 노동시킨다는 말은 사실일까?
북한은 국민들을 어떻게 대했으며 어떻게 동원했을까?
① 북한 대중운동의 표본, 천리마 운동
북한 국민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천리마운동을 꼽을 수 있다.
천리마운동이란 1956년 12월 김일성 주석이 주재한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해 진행한 운동이다.
북한은 천리마운동을 통해 경제성장과 공업화에 큰 성과를 거뒀다.
- 임영태, “북한 50년사1”, 들녘, 1999, 360쪽
북한은 천리마운동을 통해 연평균 공업 성장률 36.6%를 달성하고 공업생산을 3.5배로 늘렸다.
또한, 1956년에 46.5%였던 기계설비 자급률을 1960년에 90.9%로 끌어올렸다.
이 천리마운동은 왜 시작되었을까?
북한은 1957년부터 제1차 5개년계획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북한이 제1차 5개년 계획을 수행하는 데서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강철이었다.
강철은 트랙터 같은 농업기계를 만들거나 공장이나 집을 짓는 등 모든 산업에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양이 필요했다.
그래서 철은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 ‘산업의 쌀’이라고 비유한다.
북한은 산업 발전에 필요한 강철이 부족했다.
제철소가 철광석을 원료로 선철을 만들면, 제강소에서 선철을 ‘강철’로 만든다.
실생활과 산업에서 쓰는 철은 바로 이 ‘강철’이다.
그런데 당시 북한에는 ‘강철’을 만들 수 있는 제강소는 강선제강소가 유일했다.
강선제강소만으로는 북한에 필요한 강철을 다 생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북한은 부족한 강철을 소련으로부터 수입하고자 했지만, 소련은 북한에 강철을 팔지 않았다.
북한이 제1차 5개년 계획의 경제발전 목표를 낮추지 않으려면 소련에서 수입하려 했던 강철까지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
당시 강선제강소는 1년에 강철 6만 톤을 만들 수 있는 설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에서 수입할 예정이었던 몫까지 합쳐 9만 톤을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강철 6만 톤을 만들 수 있는 공장에서 9만 톤을 생산할 수 있냐며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1957년 강선제강소는 강철 9만 톤을 훌쩍 넘어 12만 톤을 생산해냈다.
북한 전체로 보면 1957년 생산능력이 19만 톤이라던 강철을 27만 톤 생산해냈다.
1957년 한 해 동안 공업은 44% 성장했다.
- 김성보·기광서·이신철,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개정증보판)”, 웅진지식하우스, 2004,183쪽
대성공이었다.
강선제강소의 목표 초과달성 소식은 북한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열의를 북돋아 준 듯하다.
강선제강소의 목표 달성을 계기로 북한 전역에 ‘천리마운동’이 시작되었다.
천리마운동은 하루 만에 천 리를 가는 천리마처럼 빠르게 발전하자는 운동이다.
천리마운동을 통해 북한에서 66명의 노력영웅이 탄생했고, 2만 4천여 명이 각종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노력영웅들의 이야기를 보면 북한 국민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68년 5월 11일에 열린 2차 천리마작업반 운동 선구자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이화순 노동자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임영태, “북한 50년사1”, 들녘, 1999, 352쪽~353쪽
“(이화순 동무는) 72대의 방직기를 혼자서 다루는 세계적 기록을 창조하였습니다. 이 기대들을 다루기 위하여 그는 하루 여덟 시간 동안 180~200리를 달립니다. (중략) 이 동무가 한 해 동안에 짜내는 천만 하여도 100만 미터가 됩니다.”
어느 댐 건설 공사장에서는 노동자들이 29시간 동안 연속으로 작업해 40일 걸린다는 공사를 5일 만에 마쳤다.
또, 80km 길이의 철길 공사에 나선 노동자들은 원래 4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75일 만에 공사를 완료했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 북한의 빠른 경제발전을 성공시킨 것이다.
천리마운동은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발전했다.
- 최청호 외 7인, “북한사회주의건설의 정치경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93, 68쪽
노력영웅은 개인에 대한 표창이지만, 천리마작업반운동은 함께 일하는 집단 전체가 영웅이 되자는 운동이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의 결과 5만 2,920개의 작업반이 ‘천리마작업반’ 칭호를 받았다.
천리마작업반이 5만 개가 넘으니 북한 국민 전체가 열성적으로 일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 당국도 생산현장에 현지 연구기지를 세우고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보내 노동자들과 함께 기술혁신을 해나갔다.
-김치관, 2006.05.26., ‘천리마작업반운동은 기술혁신 대중운동’, 통일뉴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60
생산활동의 양만 늘리는 게 아니라 질적 성장을 함께 이루려 한 것이다.
북한 국민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일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북한 정부가 국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을 아무리 때리고 강제로 일을 시켜도 조선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일하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은 일제에 반발해 일부터 태업을 하거나 노동현장에서 도망을 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다면 천리마운동 때 북한은 어떻게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었을까?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