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2.

 


미중관계는 그간 미국이 공격, 중국이 수비하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에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국 위상이 뒤바뀌는 양상이 나타나 주목된다.

미중 고위급회담은 3월 18일, 19일 이틀 동안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렸다. 이 회담은 미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그리고 중국의 외교부장과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참석했다.

처음에 회담 장소가 알래스카로 결정되었을 땐, 중국이 회담이 시작되기 전부터 미국에 저자세를 보인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미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은 3월 17일, 18일 한국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미중 회담을 위해선 미 국무장관이 중국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미중 회담 장소는 알레스카로 정해졌다. 미 국무장관은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뒤 알래스카로 되돌아갔고 중국이 그런 미국을 쫓아 갔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고약한 행동을 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중국이 저자세를 보였다 여긴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회담 진행 상황과 결과를 보니 상황은 영 딴판이었다. 

사례1: 회담에 대한 평가

미국과 중국은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 공동성명이나 보도문을 발표하지 못하고 회담을 마쳤다. 그런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 어떤 합의도 없이 돌아온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국무장관이 아주 자랑스럽다”라며 극찬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외교에서 성공과 실패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은 회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야 성공한 것이다. 반대로 회담이 결렬되는 게 성공인 경우도 있다. 뭔가를 빼앗기지 말아야 할 사람, 즉 수비하는 경우에 그렇다. 예컨대, 손님이 물건 값을 깎으려 흥정을 시도했다. 물건 값을 깎으면 손님이 성공한 것이고, 한 푼도 깎지 않고 제값을 다 받으면 판매자가 성공한 것이다.  

만약,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입장이었다면 회담이 결렬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이 결렬된 회담을 높게 평가했다는 건 미국이 공격이 아니라 수비하는 입장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에 대해 무시하고 하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치 북한이 미국을 대하는 것과 비슷했다.
(*참고 [아침햇살120] 북한이 미국을 대하는 태도의 성격 중 1. 고압적인 태도 615tv.net/222)

과거 미국은 중국을 고압적인 태도로 대했다. 대중 무역적자가 심하면,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넣는 식이다. 그러면 중국은 금융시장을 개방하곤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미국에 “상호 존중과 윈윈(win-win)의 정신 아래 미국과 협력하겠다”라며 미국을 달래고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태도가 바뀌었다. 이제 미국의 목표는 중국 제압이 아니라 방어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5일에 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세계 선도 국가, 가장 부유한 국가, 가장 힘 있는 국가가 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제 재임 중에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바꿔보면 ‘자신의 임기가 끝나면 중국이 최강대국이 될 수도 있다’라는 말과 같다.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는 자기 임기 동안에만 잘 버텨보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에 최강대국 자리를 넘겨주게 될 것을 예감한 듯 전전긍긍하고 있다. 

사례2: 테슬라

 

미국과 중국의 뒤바뀐 위상은 경제대결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보안을 문제 삼아 화웨이를 제재한 바 있다. 그러자 중국도 테슬라를 제재하며 맞대응했다고 한다. 아직 중국이 직접 발표한 건 아니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내용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군사시설이나 정부기관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테슬라 자동차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테슬라 자동차에 탑재된 카메라가 주변을 녹화한 데이터와 휴대폰 통화목록을 미국으로 전송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가 나가자 테슬라는 난리가 났다. 테슬라는 4월 7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테슬라 차량 내부 카메라는 북미 이외 시장에선 활성화되지 않는다”라고 입장을 올렸다.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가 중국이나 다른 곳에서 차를 이용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면 회사 문을 닫겠다”라고 선언했다. 머스크는 3월 23일엔 “중국의 미래가 위대할 것이며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가 돼가고 있다고 확신한다”라고 중국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머스크의 이 발언이 더욱 화제가 된 건 미국에서 머스크는 ‘반항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미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규제에 항상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어떤 규제를 하려 하면 공장을 옮기겠다고 협박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머스크가 중국엔 극도로 저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테슬라가 중국의 눈치를 보는 이유가 있다. 중국 시장은 테슬라 매출액의 21% 정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매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0년 중국 시장에서 테슬라의 매출액은 2019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테슬라엔 중국은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시장인 것이다. 

반면, 미국의 중점 제재 대상인 화웨이는 전 세계 통신장비 점유율 31%로 1위를 기록해 끄떡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경제제재를 하고 있는데 중국은 멀쩡하고, 오히려 중국이 미국에 대응하는 바람에 미국 기업이 위기에 빠지게 됐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사례3: “차라리 팩스회담이 낫겠다”


다시 회담으로 돌아가 보자. 회담 후 미국은 “차라리 팩스 회담이 낫겠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직접 만나거나 화상으로 회담을 하면 미중은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팩스회담을 하면 서로 자기주장만 전달하면 끝이다. 실시간으로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처럼 중국에 밀려 망신을 당하는 일은 면할 수 있다. 즉, 미국은 중국을 상대하는 게 부담스러워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차라리 팩스회담이 더 낫겠다”라고 한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이번 회담을 잘했다고 평가한다. 미중 회담을 통해 미국의 본 모습이 허약하며 중국을 무너뜨리겠다는 건 망상임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양국의 반응을 볼 때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크게 당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날 미중관계는 챔피언과 도전자 관계와 비슷하다. 그동안 미국은 챔피언을 자처했다. 그런데 챔피언 미국이 도전자 중국과의 대결을 회피한다.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을 자꾸 피하면, 사람들은 점차 미국을 챔피언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참고할 만한 과거 사례가 있다. 1970∼80년대에 마빈 해글러라는 전설적인 미들급 권투선수의 이야기다.

당시 미들급 챔피언은 우고 코로라는 선수였는데 우고는 해글러가 두려워 피해 다녔다. 그래서 해글러는 아무리 경기를 요청해도 챔피언 결정전을 할 수가 없었다. 챔피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을 때에야, 해글러는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해글러의 수난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해글러는 슈거 레이 레너드라는 선수와의 경기에서 판정패를 당한 적이 있다. 해글러는 편파판정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면서 레너드에게 재경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레너드는 해글러를 두려워했고 그와의 재경기를 피해 다니다 못해 아예 은퇴해버렸다.

사람들은 누구를 기억할까. 사람들은 해글러를 가장 위대한 미들급 챔피언으로 기억하고 미꾸라지 챔피언 우고나 은퇴해버린 레너드는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이 이야기가 남 일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치며


미중 회담 직후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단행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중국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미국은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중국을 대북 압박에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을 하면, 중국에 북한을 통제해달라, 대북제재에 동참해 달라며 협조를 요청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은 격한 대립을 한 터라 중국에 뭘 부탁할 수도 없어 난감한 상황이 됐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해서 무척 벅차다. 마치 북중이 협력해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은 모양새다.

그러던 중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말실수를 하나 했다. 중국과 쿼드*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엉뚱하게 “북중국해(North China Sea)”라고 말한 것이다. 북중국해란 없다. 
*쿼드: 미국, 인도, 호주, 일본으로 구성된 안보협의체

이에 일부 미국 언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북중국해’를 한 번 언급한 것 외에는 잘 준비되고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두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있지도 않은 북중국해란 말을 왜 하게 된 것일까? 혹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문제로 하도 골머리를 썩이다보니 중국 얘기를 하던 중 북한이 떠올랐던 건 아닐까? 그래서 무심코 “북(North)...”까지 말을 꺼냈다가 주워 담느라 생긴 해프닝은 아닐까? 

말이 꼬였던 것처럼, 앞으로도 북한 문제로 계속 국정 운영이 꼬이진 않을지 바이든 정권의 앞날이 무척 궁금하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